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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8월호] 이슈칼럼 - step by step 협동조합을 함께 만들어갑시다
  • 관리자
  •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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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돼'라고 얘기하지 말고

Step by Step 협동조합을 함께 만들어갑시다.

 

주수원(Se교육연구소 소장)

 

우리 민족은 협동의 DNA가 없어”, “협동조합 참 좋다고 하더니만 좋기는 개뿔...”,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 보지도 못했어”. 2012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될 때만 해도 경쟁위주,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될 것 같았던 협동조합이 햇수로 10년이 된 지금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기획재정부가 2020년에 발표한 <협동조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립 협동조합 중 10.4%는 등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등기비용조차 아깝거나 등기하려는 과정에서 좌초된 경우죠. 등기만 했을 뿐 사업을 하지 않고 있는 이른바 휴면조합이 40% 가까이 됩니다. 전체적으로 협동조합 중 32%가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합니다. 처음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숫자일 것입니다. 습니다. 특히나 주변 여기저기서 협동조합 하다가 지쳤다는 얘기가 많이 들립니다.

 

출처: 바이럴마케팅협동조합 공식블로그

왜 그럴까요? 제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경험을 얘기 드려봅니다. 여기 협동조합에 꽂힌 이들이 있습니다. 다 함께 사는 경제, 모두가 행복해지는 기업, 협동조합. 말만 들어도 두근거립니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나면 지금의 문제들이 뭐든 잘 해결될 것만 같습니다. 협동조합은 최소 5명이서 만든다고? 그럼 내 주변의 3명을 더 모아보자란 생각으로 찾아봅니다.

 

이렇게 설득의 대상이 된 3명은 아직은 협동조합이 뭔지도 모르고 시큰둥합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저리 열심히 얘기하 는 걸 보면 좋은 것일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럼 내가 뭘 하면 되는데?” 하고 묻자 일단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돼라고 합니다. 출자금은 우리끼리 정하면 되니 그럼 우선 각자 10만 원 정도만 내보자고 의견이 모아집니다. 혹 잘못될 경우 없는 셈 칠 수 있는 돈이죠.

 

이렇게 5명이 모였습니다. 처음에 적극적으로 나선 2명을 리더그룹, 뒤에 함께한 3명을 참여그룹이라고 해봅시다. 리더그룹은 이렇게 5명이 모인 상황에서 이제 모두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참여그룹은 출자금을 내놓은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죠.

 

여기서부터 동상이몽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동상이몽으로 인한 갈등이 신고서류를 접수할 때부터 슬슬 피어오릅니다. 협동조합의 실체를 갖춘 뒤 사업을 하려면 법인을 설립해야 하고, 이때 각종 서류 작성이 필요합니다. 리더그룹은 참여그룹과 함께 서류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협동조합이란 모두가 주인이 되고 다들 자기 일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참여그룹은 다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출자금을 내놓은 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모임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리더그룹은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만, 서류작업 정도는 몇 명이서 뚝딱 만들고 말지란 생각으로 정리합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입니다. 신고필증이 나오고 이제 등기를 하려고 합니다. 앞서 출자금을 한 사람당 10만 원으로 하고 5명이서 50만 원을 모았습니다. 등기비용으로 지역에 따라 그리고 법무사를 통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40~100만 원 정도 듭니다. 아뿔싸! 출자금이 다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리더그룹은 10만 원을 초기 신뢰비용으로 보았고, 본격적인 사업비용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업종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느 누가 50만 원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처음 모은 돈일 뿐 협동조합 사업이 본격화되면 조합원들이 계속 증자(자본금을 늘리는 일)를 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참여그룹도 그러했을까요? 아닙니다. 참여그룹에게 출자금은 일시 후원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등기비용에 따라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을 얘기하는 순간 참여그룹은 협동조합이 밑 빠진 독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의 동상이몽 속 균열과 달리 이때의 균열은 좀 더 현실적이며, 앞서서 얘기한대로 10.4%는 등기를 하지 않은 것이죠. 등기까지 갔다 하더라도 균열은 점점 커져서 조합원들의 참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일단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돼라는 말이 문제였습니다. 리더그룹은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출자금이 협동조합 사업에서 무슨 의미인지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출자금만 아니라 조합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과 의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조합원으로서 의결권과 선거권을 가진다는 얘기는 했나요? 동업과 달리 협동조합은 공통의 규칙으로서 7원칙을 비롯해 정관, 규약, 규정 등의 우리협동조합만의 규칙이 있다는 것은 어떤가요? 어쩌면 리더그룹 역시 위의 내용을 몰랐을 것입니다. 협동조합은 좋은 것이야, 회사와 달리 우리 모두 주인이 될 수 있어 정도의 내용으로 서둘렀을 수 있습니다. 모르니깐 설명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설립 서류에 급급해서 사업계획은 뒷전이 되지 않았나요? 개인사업을 하려고 해도 상권분석을 하고 자금을 어디에서 조달할지 꼼꼼히 따져 보는데 반해 협동조합은 만들고 나서 사업 고민하자라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더욱이 협동조합은 여러 사람이 함께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로서 규칙과 회의라는 독특한 운영원리를 지닌 기업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영역에서 협동조합이 장점을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협동조합이라면 정보비대칭의 영역, 독과점 영역에서 협동조합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협동조합이라면 자주관리가 장점을 발휘하는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며 조합원들이 임금을 받기에 출자금의 규모와 매출이 다른 협동조합과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 사업자협동조합은 또 어떤가요. 골목상권의 소상공인들이 모여서 공동의 설비와 영업을 할 때 서로가 가진 장점과 공동의 과제를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소상공진흥공단의 소상공협업화사업의 지원금에만 솔깃해서 만들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사업자협동조합 중 프리랜서들이 모인 협동조합의 경우 공동사무국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상근자를 고용할 수 없다면 비상근에 대한 최소한의 수당책정이 가능한 구조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다양한 협동조합의 모델(출처:남문올레협동조합 공식블로그)

 

협동조합을 이해하고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공부해야할 내용들이 있고 함께 논의하며 준비해야할 내용들이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간단하게 협동해서 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이죠.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쏜다>를 보면 농구를 처음 해보는 체육인들이 나옵니다. 농구의 기본 원리는 높은 골대에 공을 넣는 것입니다. 어라 그거야 쉽지 할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규칙이 있으며 공을 넣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있습니다. 협동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어떤 분은 볼멘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나는 미리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고민해서 준비했지만 잘 안되었다고. 맞습니다. 아무리 잘 준비해도 100%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업은 다양한 위험요소가 있습니다. 이러 이러하게만 준비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는 완벽한 방법이 있다면 모두가 성공하겠죠. 경영학과 교수라고 해서 사업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축구 해설가가 축구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또 성공한 사업가라 하더라도 2번째 사업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다른 이에게 사업 컨설팅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골목상권>의 백종원이 컨설팅한 음식점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닌 것처럼요. 다만 위에서 언급한 여러 내용들을 조합원들과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은 가운데 뛰어든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로또와 같겠죠.

 

이제 여러분들이 협동조합을 준비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일단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돼라는 말을 하지는 않으시겠죠? 혹시라도 이렇게 시작을 한 협동조합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조합원들과 협동조합을 함께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시길 부탁드립니다. Step by Step, 협동조합을 함께 만들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