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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사회적기업인터뷰 - 즐거운밥상 편
  • 관리자
  •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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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생을 꿈꾸는 저희 센터 직원의 마음가짐처럼 박찬무 대표님 같은 훌륭한 기업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간단하게 대표님 소개와 이름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즐거운밥상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천안, 아산 지역에 내려온 거는 91년도에서 99년도인데 당시에는 학생운동에 대한 활동들이 활발한 시기였습니다. 졸업하고 나면 학생 신분이 아니기에 사회 변화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이후 지역자활센터를 접하게 되었고 주된 존재 이유가 저소득층 주민분들의 자립 자활을 돕는 역할이기 때문에 저의 지향과 잘 맞아 997월부터 천안지역 자활센터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실무자로서가 아닌 수급자랑 같은 처우를 받으면서 리더로 성장해나갔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분들(저소득층)과 함께 일하고 밤이 되면 서류 정리하고 노동을 같이했으며, 낮에는 같이 청소 일하고 두부와 밥 만드는 일을 새벽까지 하고 그런 바쁜 나날을 지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경력을 쌓아 실무자의 자리까지 올라갔고요 당시 저는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때 당시의 기능직 공무원이 점차 관료화되고 획일화되었다는 환경이 싫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10년 동안 일을 하던 중 회의감이 들어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지역 자활센터에서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은 그 말 그대로 정말 어려운 이웃들의 자립자활을 돕기 위한 거였는데 어려운 분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면서 신뢰를 쌓았던 탑이 무너지는 듯했기 때문이에요. 이후 제가 맡았던 사업단이 즐거운 밥상이었으니까 설득이란걸 해봤어요. 같이 일을 하자라고 제안하는데 당시 매출이 2억 정도에 10명이면 굉장히 생산성이 떨어지는 급여를 갑자기 벌게 되는 상황이니 아내도 있고 자식도 둘이나 있으니 어찌해야 하나 두 달여 고민했고 가족의 응원과 동의가 있어 그렇게 다시 저는 즐거운 밥상에 고용이 된 겁니다. 그곳에서 총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선출되었고 구성원 자체가 취약계층이 많다 보니 상황에 대한 갈등도 많고 변수도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조직에는 갈등이 있잖아요. 당연히 그러다보니 버티는 분도 계시고 또 나가서 창업도 도전해보시고 그러다 다시 오시면 또 받아주고 그런 행태가 반복되었네요. 그분들이 이제는 중간관리자로서의 위치에 있고 7년 이상 장기근속이 50%, 취약계층이 전체 구성원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아무튼 말 그대로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현재는 즐거운 밥상 그대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Q. 대표님께서 누구도 굶지 않는 세상 만들기라는 슬로건을 영상으로 인터뷰하면서 실례가 안 된다면 이 같은 마음가짐을 위한 계기가 있으십니까?

 

A. 2005년 군산시하고 서귀포시에서 건빵 도시락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아이들 도시락에 건빵, 단무지, 메추리알. 이렇게 공급가액이 싼 음식으로 대체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했던 적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겪어보지 않으셨을지도 모르는데 밥을 하나 갖다주면 할머니 할아버지랑 셋이 먹고 이런 가정이 아직도 있다는 게 현실입니다. 그 당시에 시대적 복지 차원에서 도시락을 제공했었는데 그거를 행정에서 못하니 위탁을 한 거죠 그 위탁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공개화, 투명화된 부분이 아니고 업체에서도 돈이 안 되니 꺼렸던 거죠. 업체 처지에서는 억지로 떠맡기는 일도 있고 무조건 영업이익 10%를 떼고 시작합니다. 그게 2,500원이에요. 배송비와 세금 포함한 가격이죠. 그렇게 되면 실제로는 한 2천 원 가지고 도시락을 만드는 거예요. 말 그대로 밥도 반찬도 없는 도시락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기사화되고 논란이 되었지만 바뀌는 건 없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도시락을 만드는 건 어떻겠느냐를 제안하게 되고 정말 우리 아이들이 굶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직원과 같이 공감했던 절절한 표현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 표현을 계속 쓰고 있는 겁니다.

 

Q. 살펴보면 2010.11월 충남사회적기업 1호로 지정되면서, 2013년에는 충남 우수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경사를 이루어냈습니다. 이에 자부심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 이러한 결과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2012년도는 지금 여러분이 계시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만들어진 해입니다. 지금은 야인이 됐지만 그 당시에는 민선 5기시기로 활성화가 되었을 때로 기억합니다. 초창기에는 충남연구원장님을 비롯하여 사회적 경제의 활동가를 얘기했던 사람들이 충남 지역에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주체가 협의가 잘 됐기 때문에 센터를 민간에서 운영하게 할 수 있게끔 만들어가는 과정도 있었고요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어떤 좋은 사례들을 많이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는 필요성에 경진대회 같은 활동이 다수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 기업들 초청해서 한 번 홍보도 하고 발표도 하고 그런 포럼을 개최하면 어떨까 했던 거예요. 본론으로 아까 말씀하신 1호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에요. 근데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게 단순히 저희가 제일 먼저 냈기 때문에 1호에요. 저희가 잘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Q. 도시락, 출장뷔페 등 다양한 테마의 도시락 사업을 실천하고 계시는데 가장 공들이는 사업과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A. 별도의 테마는 없습니다. 저희는 식품 제조 가공업이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공장인 거예요. 그렇기에 소비자가 요구하는 건 다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다만, 예비군 도시락은 공공 급식 영역이잖아요. 여기에는 예비역도 있으실 수 있겠는데 아시다시피 사단에서 발주하는 것이고 천안시에서도 협력하고 하는 것이니까 연 단위 계약이라는 안정감도 있지만 계약이 안 되면 금액 자체가 크기에 리스크가 있는 것이죠. 직원이 17명인데 아르바이트까지 하면 31명 됩니다. 거기에 배송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은 운영이 어렵잖아요. 이거를 대체할 다른 소비 영역으로 행사, 술자리 파티 등 다양한 테마를 갖고 하는 겁니다.

 

Q. 치솟는 물가 상승률로 인하여 취약계층은 더더욱 힘든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에 결식아동이나 독거노인 등을 돕는 주 사업을 시행하고 계시는데요. 대표님께서 바라는 사회란 무엇입니까?

 

A. 과거에 비해 현재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는데요. 젊었을 때는 흙이 있었으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렵다. 지금 이렇게 복잡한 사회 또, 다양한 이념과 가치관이 있는 사회에서 단세포적 생각은 살아남을 수 없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모든 게 과학적으로 해석될 거라는 착각을 했습니다만, 지금 할 수 있는 시각으로 마을이 눈에 보이더군요. 내가 살고 있는 공간. 그 공간에서의 자립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과 생산 공체를 만드는 것 그게 제 지향점이에요. 왜냐하면,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이제 정부도 해결하기 어려워요. 청년들도 결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빈부격차는 가속화되고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어 1%를 위해 나머지가 희생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본인들 스스로가 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살아남는다는 겁니다. 그래야 실체가 있는 활동을 위해 노력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로부터 나아가는 것이 제가 바라는 사회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박찬무 대표님께서 앞으로의 기업 향방과 포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저는 여기 계신 분들이 즐거운 밥상을 운영하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제가 대주주이고 지분을 50% 갖고 있지만 저희는 주주에게 배당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원칙대로라면 총회를 통해서 이익잉여금이 생기면 이익금 처분을 총회에서 결정하지만, 저희는 그게 좀 다르죠. 아마 지금의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이렇게 하는 곳은 몇 군데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단 제 기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새로운 리더가 성장하면 드리고, 저는 마을에 들어가서 아까 언급했던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이 제 앞으로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