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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3월호] 이슈칼럼 - 사회적 가치, 협력의 언어
  • 관리자
  •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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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가치, 협력의 언어

 

 

 한국사회가치평가 기술이사 김수진

 

 

사회적 경제조직이 피해갈 수 없는 질문, 사회적 가치란 무엇인가?

 

원고 의뢰를 받고 사회적기업육성법협동조합 기본법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사회적기업육성법]

1(목적) 이 법은 사회적기업의 설립ㆍ운영을 지원하고 사회적기업을 육성하여 우리 사회에서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통합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2(정의) 1사회적기업이란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ㆍ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으로서 제7조에 따라 인증받은 자를 말한다.“

 

 [협동조합기본법]

1(목적) 이 법은 협동조합의 설립ㆍ운영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자주적ㆍ자립적ㆍ자치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촉진하고,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2(정의) 3사회적협동조합이란 제1호의 협동조합 중 지역주민들의 권익ㆍ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협동조합을 말한다.

 

 

사회적 경제조직을 통상적으로 비즈니스를 통하여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는 조직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위 두 법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사회통합’, ‘국민의 삶의 질 향상’.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 ‘지역주민의 권익과 복리증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음등으로 표현하는 셈이다(그리고 그 방법으로 사회서비스 확충이나, 일자리 창출과 제공 등의 예시를 들고 있다). 이로써 사회적 경제 조직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새로운 사회현상, 예를 들어 AI와 로봇의 등장으로 사람이 하던 위험한 일을 기계와 기술이 대신할 경우 이를 사회적 가치로 볼 것인지,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회문제로 볼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비영리섹터부터 정부, 기업, 사회적 경제조직까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낸다등의 표현과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에 비하여 정작 무엇을 사회적 가치라고 할지 또는 무엇이 사회적 가치가 아닌지, 사회적 가치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며,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 담론은 사회적으로나 학계에서도 이제 막 시작된 단계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가치를 정의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론들이 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순 있어도 우리가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데 필요한 체계적 관점과 풍부한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두 가지 사회학적 접근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문제론: 사회적 가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해결해 가는 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그 뒤에 남겨진 빈부격차, 고용불안, 공동체성 붕괴와 그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불신 속에 살며 무기력에 시달리기도 한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COVID-19와 같은 전세계적인 사회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이상적인 상태에 이르지 못한 결핍, 또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사회문제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사회문제는 우리사회를 지탱하고 운영해 나가는 기본적인 체제들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는 경우 발생한다. 법과 치안제도가 원활하게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범죄가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집단의 다른 집단에 대한 지배, 억압과 착취, 집단 사이의 경쟁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또는 사회적인 낙인과 선입견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이러한 현실을 보다 이상적인 상태에 가까워지도록 개선하는 것을 사회적 가치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사회적 경제조직은 어떠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사회문제가 시대적, 지역적 맥락에서 어떤 구조적인 이유로 발생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정의하는 방식으로 각자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 조직이 사회문제의 정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사회문제의 범위와 개념이 달라지고,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방향에 따라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청년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조직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청년들이 힘드니까’, ‘청년들이 사회적인 약자이니까’, ‘취업률이 어느 때보다 낮으니까라는 두루뭉술한 말로는 청년들이 사회적 문제의 당사자로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청년들을 세대 간 비교해보면 상당한 고학력에, 몸이 건강하고, 학습능력도 뛰어난, ‘뭐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금융 인프라가 상당히 우수한 편이다. 그럼에도 예금, 대출 등 금융과의 거래실적에 기반한 현재의 신용평가제도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금융거래기록이 전혀 없는 청년들의 신용을 일방적으로 저평가한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은 그들이 감당할만한(affordable)하고 유리한 금융서비스로부터 배제되는 불리한 지위에서 금융제도에 편입된다. 충분한 상환능력이 있음에도, 저평가된 등급 때문에 높은 이자를 내야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어 청년들의 부담이 가중된다. 사회적 경제조직 중에 이렇게 현재의 금융제도가 청년들에게는 필요한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사회문제를 포착하여 이를 해결하는 새로운 신용평가방식을 개발, 적용하는 대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인 지지를 얻는다. 이렇듯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을 구체적으로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할 때 사회적 경제조직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사회의 질(Quality of Society) : 사회적 가치는 사회공동체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접근법은 사회적 가치가 개인의 삶의 질을 넘어 사회공동체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보는 사회의 질(quality of society) 이론이다. 이 논의는 1990년대 즈음부터 OECD 및 유럽에서 사회적 진보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활발히 논의된 바 있다.

 

사회의 질은 사회문제론과는 반대방향에서 사회적 가치 논의를 시작한다. 사회문제론은 사회의 부정적인 상황에서 출발하여 이를 해소하는 과정을 사회적 가치로 본다면, 반대로 사회의 질 개념에서는 우리사회의 구성원을 잘 통합시킬 수 있는 것, 즉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균형을 이룬 사회를 추구하는 과정을 사회적 가치와 연결하고 있다. 개인의 발전과 집단의 발전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지고, 시스템의 발전과 시민들이 생활에서 체감하는 삶의 질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진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긍정적 요소를 사회적 가치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회의 질 논의에서는 다음 네 가지를 사회의 질을 높이는 요소로 본다.

첫째는 사회경제적 안전성으로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삶에 장기적인 안목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의미한다. 사회적 경제조직은 기본적 삶을 위한 물질적, 환경적 자원 등이 부족한 이들을 위하여 정부와 시장을 대신해 이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둘째는 사회적 응집력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 연대 및 사회 공동선에 대한 헌신 등 사회구성원과 사회 집단 간의 도덕적·사회적 관계를 사회적 응집력의 요소로 볼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은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내재화하고, 지역사회의 신뢰를 구축하며 더 나은 규범과 가치를 제시하기 위한 비즈니스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낸다.

 

셋째는 사회적 포용성으로 사회구성원들이 지닌 가치나 신념, 조건과 무관하게 그가 사회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회의 다양한 제도나 기회구조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은 여성, 장애인, 노인, 결혼이민자, 성소수자, 탈북자를 포함한 난민 등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배제되기 쉬운 이들을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의 주체로 참여시키거나 보다 평등한 조건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넷째는 사회문화적 역능성이다. 역능성이란 개인의 역량이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수준을 의미한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공적인 사안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구성원이 정치적 과정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 차원에서도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돕거나, 그러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능력을 개발하고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느린 학습자의 문해력을 높여주고, 어려운 공공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해주거나 지역의 유휴공간을 시민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등 사회문화적 역능성을 높임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의 질을 높이는 4가지 요소

 

이와 같이 각자의 사회적 경제조직이 사회의 질을 높이는 어떤 요소를 충족시키는지 설명하는 방식으로, 조직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역시도 앞서 살펴본 사회문제 중심의 접근법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직이 집중하는 대상을 위 네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의 강화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가를 최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게임체인저(Game Changer)의 등장?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ESG

 

2019년도에는 미국의 상공회의소 격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에서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서(Statement of the Purpose of the Corporations)”를 발표하였다. 여기서는 본격적으로 기존의 주주자본주의에서 탈피하여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노력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이전을 주창했지만, 한 쪽에서는 구체적으로 계획되고 실행되는 행동 없이는 기업들의 선언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의심스런 비판도 바로 제기되었다. 이어 2020년 초,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의 최고 경영자(CEO)인 래리 핑크가 투자자들과 기업 CEO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이 투자의사 결정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이며, 앞으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투자 결정 기준으로 삼겠다"는 내용이었다. 지속가능성 요인들이 투자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지속가능투자(sustainable investing)가 고객 포트폴리오의 핵심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며 투자자본이 흐르는 방향을 시사했다.

 

이후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지난 두 해 동안 ESG와 관련된 이야기가 재계를 휩쓸었다. 사회공헌부터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가치창출), 지속가능경영, 따뜻한 자본주의 등 온갖 개념들이 난립해오던 것이 ESG 개념으로 정리되는 것인지 착각이 들만큼 소위 ‘ESG 광풍이 불었다. 여러 기업들에 ESG 전담부서가 새로 생기거나, 지속가능경영부서가 ESG 전담팀으로 개편되고 있다.

 

확실한 것은 경제적 이윤 뿐 아니라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시장의 선택받을 수 있다는 것, 쉽게 말해, 사회환경적으로 우수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기업들이 확실히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소비자들이 촉구해 온 것에 응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공격적인 경쟁전략이자 생존전략의 문법으로 읽힌다.

 

지피지기(知彼知己): 협력의 언어로서 사회적 가치

 

기업들이 사회문제에 나서는 것처럼, 비영리섹터나 사회적 경제 조직에서도 적극적으로 비즈니스 원리를 도입하고, ESG를 어떻게 추구해 나갈 것 인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비영리스타트업들이 키워지고, 비영리조직 설립과정에서 소셜벤처를 표방하며 창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영리기업과 비영리 조직, 사회적 경제조직을 구분하던 가치지향적 기준들은 이제 모호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경제조직의 중요성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조직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해 보는 과정을 갖기를 제안한다.

 

자칫 사회적 가치와 그와 관련된 자원을 두고 영리기업부터 비영리조직에 이르는 수 많은 조직들이 치열한 경쟁을 시작할 것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필자는 이것이 중요한 소통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회적 경제조직은 각자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와 비즈니스가 지향하는 바를 구조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영리기업의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견제할 뿐 아니라 같은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는 영리 기업 및 비영리 조직 등과 환경·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의 언어를 갖게 될 것이라 기대하는 바이다.

 

 

 

도움 자료

사회성과인센티브 사무국(2022), 사회성과인센티브 매뉴얼 2.0

이재열(2018), 시대적 전환과 사회적 가치, Social Innovation Monitor Vol.16 20183, 사회적가치연구원